[아이뉴스24 박지은·황세웅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944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최 회장이 노 관장한테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은 경영의 안정성은 유지하면서도 재산분할은 해야하는 상황을 고려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거액의 재산은 분할하되 분할 대상이 된 SK(주) 지분은 계속 최 회장이 보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SK그룹 지배구조에는 변함이 없게 됐지만, 최 회장은 경영권을 흔들지 않으면서 1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왜 주식 대신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했나
이번 판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법원이 SK㈜ 주식을 공동재산으로 인정하면서도 노 관장에게 지분을 직접 이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가사와 자녀 양육, SK그룹 대외활동 등이 SK㈜ 주식 가치 유지와 증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산분할은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재계에서는 SK㈜가 SK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핵심 계열사라는 점을 고려한 판단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 17.9%는 그룹 경영권의 기반인 만큼, 재산분할 과정에서 지분이 직접 이동할 경우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9440억원 현금'…쉽게 팔 수 있는 자산이 없다
재산분할금은 현금으로 지급해야 하지만 최 회장의 개인 자산 대부분은 SK㈜ 지분에 집중돼 있다.
SK㈜ 지분은 그룹 지배력과 직결되는 핵심 자산이어서 시장에서는 직접 매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9440억원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에서는 △주식담보대출 확대와 △계열사 배당 확대 △비상장 자산 활용 등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된다.

실트론 활용 가능성도 거론
시장에서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활용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SK실트론은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비상장 계열사다. 상장사인 SK㈜ 지분을 처분하는 것보다 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자금 조달 카드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다만 실제 활용 가능성은 이전보다 불확실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두산그룹과 SK실트론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아직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최근에는 AI 반도체 시장 확대와 함께 웨이퍼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면서 그룹 내부에서도 SK실트론의 중요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당장 매각을 추진하기보다 보유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증권가 "배당 확대가 가장 현실적"
증권가는 우량 계열사의 배당 확대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하나증권은 이번 판결 이후 "SK그룹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재원을 마련할 방안으로는 우량 자회사의 배당 확대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갖춘 계열사의 배당이 확대될 경우 SK㈜를 거쳐 최 회장에게 현금이 유입되는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주식담보대출도 거론…최 회장 측 "상고 여부 검토"
주식담보대출 역시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이미 최 회장이 상당수 SK㈜ 지분을 담보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추가 대출 여력과 금융권 판단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측은 판결 직후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기업인의 이혼이 개인의 재산분할을 넘어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해외에서는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배우자에게 대규모 재산을 분할한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2019년 이혼 당시 전 부인 매켄지 스콧에게 아마존 지분 4%를 넘겼지만, 의결권은 자신이 유지하며 경영권 변화를 최소화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이혼 과정에서 막대한 자산을 분할했지만 경영권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번 최 회장 사건은 배우자에게 주식을 이전하는 대신 현금 지급을 명령했다는 점에서 해외 사례와는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기업 경영의 안정성과 재산분할을 함께 고려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황세웅 기자(hseewoong8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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