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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극 고립지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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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극 과학기지와 북극 항로에 따른 구체적 가이드라인 있어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아는 한, 우주 전체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나 하나뿐이다. 나는 지구에서 12광년 떨어져 있다. 도움은 오지 않는다. 온 우주를 샅샅이 뒤져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한 인간에게 ‘고립’은 극한 상황을 뜻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나오는 위 문구처럼 인간은 고립되는 순간, 희망을 잃고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고립’이다.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지구에서도 고립 지역이 있다. 남북극 등 극지이다. 남극은 여러 나라가 과학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1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는 월동대원이 있다. 우리나라는 남극에 장보고과학기지와 세종과학기지 을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각 기지에 월동대원을 보낸다. 최근 사건 사고가 있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지난 4월 한 대원이 흉기 난동을 벌여 국내로 송환돼 현재 재판받고 있다. 최근 북극 항로도 열리고 있다. 중국은 올해만 60여 차례 북극 항로에 선박을 투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8월 22일 첫 북극 항로에 나섰다. 최근 일련의 남극 기지에서의 사건과 북극 항로 개척을 앞두고 극지 의료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반복적 사건 발생, ‘사후약방문’ 극지의료 문제 없나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2016년 11월 남극 취재당시 찍은 빙설. 우리나라는 남극 장보고와 세종과학기지에 1년 동안 생활하는 월동대원을 파견한다. 극야 기간에는 고립감에 따른 정신 건강에 비상등이 켜지기도 한다. [사진=정종오 기자]

최근 발생한 남극 과학기지에서의 사건 사고는 극지 의료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때마다 대처하는 임시방편과 사후 약방문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기범 대한극지의학회 회장(정신과 전문의)은 “(당시 장보고기지에서 사건이 있고 나서)정신 상담은 일주일 뒤, 월동대원들을 중심으로 정신 상담이 시작했다”며 “극지연구소에서 이런 일이 있으니 상담을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연락이 와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신 상담은 원격 화상으로 월동대원을 대상으로 했다. 고립된 연구소에서는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몇 년 전 세종과학기지에서 낙상 사고가 발생했을 때 ‘권한과 결정’의 문제가 터진 바 있다.

당시 세종과학기지에는 의료진도 월동대원으로 있었는데 해당 낙상사고를 판단할 때 △깁스해야 할지, 수술해야 할지 △인근 기지로 이송해야 할지, 칠레로 후송해야 할지 등을 두고 판단의 가이드라인이 없었다. 혼자서 결정하기에는 버거웠다는 의견이 있었다.

극지의료지원센터 설립, 이제는 서둘러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2015년 9월 우리나라 쇄빙선 아라온호에서 바라본 북극해의 오로라. 북극항로가 열리면서 여러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정종오 기자]

이런 상황에서 극지의료와 사고에 대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하나의 방법이 ‘극지의료지원센터’ 설립이다. 이번 사건처럼 흉기 난동이든 집단 갈등이든 사건이 벌어졌을 때 관련 위원회가 구성돼 사건의 처음부터 자세히 파악해 이를 근거로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이다.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주관적, 임시 판단을 넘어 극지의료지원센터에서 전문가들이 모여 ‘해당 사고’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침을 내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다.

윤 회장은 “고립에 따른 정신적 힘겨움이 있다면 ‘정신심리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에서 해당 사건을 자세히 파악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이런 장치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관련 위원회에는 극지연구소에서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 외부에는 정신과 의사 혹은 심리학 전문가, 여기에 필요하다면 월동경험이 있는 대원 등 8명 정도로 구성하면 된다고 윤 회장은 판단했다.

북극항로 열리는데, 구체적 가이드라인 없어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지난 8월 10일 북위 76도에서 탐험하고 있는 아라온호. 지구 가열화에 따라 북극 바다얼음이 빠르게 녹고 있다. 북극 항로가 열리고 있다. [사진=극지연구소]

극지의료 문제는 남극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북극 항로가 빠르게 열리고 있다. 중국은 올해 60여차례 북극항로를 운항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우리나라도 지난 8월 22일 팬스타 아크로(PanStar Acro)호가 부산에서 출항해 북극해를 뚫고 9월 12일 영국에 입항했다.

북극 항로를 오가는 선박의 경우 선박법에 따라 달라지는데 ‘선의(선박에 탑승하는 전문의)’가 반드시 탑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료를 담당하는 담당자는 지정한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격 지원을 통해 해결한다.

나아가 긴급 후송이 필요한 심각한 상황일 대는 연안 국가(러시아와 노르웨이 등 북극권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는 시스템으로 돼 있다.

윤 회장은 “북극 항로가 열리고 활성화되면 예기치 못한 긴급 의료 상황에 발생할 수 있다”며 “스타링크 등 원격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이를 국내 전문의와 연결하는 장치 등을 세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회장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몇 달 동안 배에 고립됐던 사례도 있고 북극 항로가 열리면서 새로운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단편적으로 해수부가, 극지연구소가, 해당 선박 해운사가 알아서 하는 게 아니라 국가 표준의 프로토콜 혹은 표준 가이드라인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북극 항로에 따른 의료 지원시스템에 대해 최수범 국민대 북극학과 특임교수는 “폴라 코드라는 게 있는데 극지를 항해하는 선박은 극지에 적합한 장비와 기능을 갖춰야 하고 이게 기본”이라며 “선원들은 극지 항해를 위해 선원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폴라 코드(Polar Code, 극지해역 운항선박 안전기준)는 국제해사기구(IMO)가 만든 극지 해역을 운항하는 선박의 안전과 환경 오염 방지를 위한 강제 국제기준을 말한다. 우리나라 선박이 북극 항로를 항해할 때 선박에 결함이 생기거나 선원에 문제가 생기면 그 지역의 연안 국가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는 방법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북극항로 시범운항 컨테이너선인 팬스타 아크로호가 지난 8월31일 북극해에 진입해 운항하고 있다. 선박 앞에는 유빙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신속함이다. 최 교수는 “각국의 연안별로 지정이 돼 있는데 북극은 범위가 워낙 넓다 보니까 실질적이고 적절한 지원과 도움을 받기에는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북극 항로를 가다가 예상치 못하게 얼음에 갇히거나 며칠 동안 고립되는 상황이 펼쳐졌을 때 비상 대응수단은 있을까. 최 교수는 “북극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 같은 경우는 디지털 헬스케어라든가 원격 모니터링 기술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아직 IMO가 그 정도까지는 진도를 못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폴라 코드에 선원의 건강이라든가 의료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구축돼 있지 않다는 거다. 최 교수는 “앞으로 논의돼야 하는 부분”이라며 “이 부분은 굉장히 중요한 의제로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선원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원격 진료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충분히 학술적으로나, 의료적으로 구체적 논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현재 북극 항로 항해가 적을 때 미리 항로가 활성화된 이후를 가정해 충분히 논의가 돼야 한다”며 “전문가 단에서 먼저 논의를 시작하고 그 다음 우리 정부가, 이후 IMO로 넘어가면서 단계별로 해야 할 것”고 말했다.

북극 관련 정부의 특별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5월 ‘북극항로 활용 촉진 및 연관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 소속의 ‘북극항로위원회’를 신설했다. 최 교수는 “총리실 산하의 위원회는 ‘거수기’ 위원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며 “의료, 해운 등 여러 방면에서 북극 항로에 대한 실질적 위원회가 되려면 대통령 직속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발-파견-복귀 잇는 ‘전주기 디지털 멘탈케어’ 구축해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지난 4월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나 해당 대원은 국내로 송환됐다. [사진=정종오 기자]
남극의 빙붕. 고립지에서 겪은 대원들의 상태를 상시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진=극지연구소]

전문가들은 월동대원과 북극 항로 승선원의 정신 건강 관리가 단순히 ‘선발 단계의 일회성 적성검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고립과 극야(Polar Night)가 지속되는 환경에서는 아무리 건강한 개인이라도 시차 생체리듬 붕괴와 감각 차단으로 인한 급성 우울, 불안, 편집증적 반응을 겪을 위험이 급격히 커지기 마련이다.

스마트워치나 웨어러블 링 등 생체신호 측정 장비를 활용한 ‘실시간 스트레스와 수면 모니터링’, 정기적 원격 심리평가 프로토콜 도입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기지 내 전문의의 직관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 상시 대기 중인 원격 의료팀이 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거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대원들이 겪는 이른바 ‘귀환 후 적응 증후군(Reverse Culture Shock)’이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사후 추적 관리 역시 국가 극지의료 체계의 필수 항목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홀로 의사’… 법적 보호 장치와 표준 프로토콜 시급

현재 남극 과학기지에 파견되는 의료 인력은 통상 1명의 일반의나 전문의만 파견한다. 이들은 중증 외상, 맹장염 같은 응급 수술부터 치과 질환, 급성 정신과적 발작까지 모든 영역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중압감에 노출돼 있다. 환자 격리나 후송, 침습적 치료 등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발생하는 법적·윤리적 책임 역시 현장 의사 1인의 몫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한 극지의학 전문가는 “밀폐된 환경에서 대원 간 위계질서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계급이나 지위와 무관하게 의료적 판단(격리·직무배제·조기후송 등)을 강제할 수 있는 ‘의료최고책임자(CMO)’로서의 독립적 전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격 협진을 통한 진료 가이드라인을 표준화하고, 통신 지연이나 응급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의료 사고에 대해 현장 의료진을 보호하는 법적 면책 장치가 제도화돼야 현장의 소신 진료가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골든타임 없는 북극해’…해법은

북극 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 대비 운항 일수를 10일 이상 단축하는 ‘기회의 바다’로 꼽는다. 의료 안전망 측면에서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가깝다. 선박이 유빙에 갇히거나 통신 두절, 악천후를 만날 경우 연안국의 수색구조 자산이 도달하기까지 수일에서 수주일이 걸려 일반 해역의 ‘골든타임’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국적선에 저궤도 위성 통신망(스타링크, 원웹 등) 구축을 의무화하고 고화질 원격 화상 협진과 초음파·심전도 등 디지털 진단 기기를 필수 탑재하도록 선박 설비 기준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다면 IMO 차원의 ‘북극해 선원 원격의료와 응급이송 표준 지침’ 제정을 정식 의제화하고 북극이사회와 북극권 인접국(러시아,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등)과 양자·다자간 응급의료 협정을 사전에 체결하는 외교적 실무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윤기범 회장은 “남극의 월동연구원과 북극해를 항해하는 선원들이 ‘도움은 오지 않는다’는 처절한 고립감이 아니라 ‘국가가 24시간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신뢰 속에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입법과 제도화로 답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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