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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44> 남러시아 볼가강 하류 '아스트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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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8월13일, 서울 출발한 지 41일째이다. 카자흐스탄의 '아티라우'는 북위 47도이다. 아침 기온 17도로 우리의 가을 날씨 비슷하다. 오늘은 카스피해 북부의 초원 지대를 지나서 우랄강을 건너 러시아로 다시 재입국해야 한다.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고생한 경험 때문에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한다.

중간에 휴게소 식사가 어쩔지 몰라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미리 샀다. 카자흐스탄 샌드위치는 양고기를 많이 넣어서 따뜻할 때 먹으면 맛있다. 하지만 식어서 딱딱해진 샌드위치는 맛이 없다.

도로변 초원의 풍경은 가을로 변하는 황갈색이다. 카스피해 북쪽 카자흐스탄 지역은 황량한 거친 초원이다. 주위에 산이 없어서 끝없는 지평선이다. 카자흐스탄 국민은 세계에서 1인당 육류 소비량이 가장 많은 민족이라고 자랑한다. 이들은 스스로 '늑대' 다음으로 고기를 많은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세계 9번째 영토가 넓은 카자흐스탄은 대부분 영토가 광활한 초원으로 되어 있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갈색 거친 초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갈색 거친 초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윤영선]

광대한 카자흐스탄 초원은 지역마다 자라는 풀의 종류가 달라서 풀을 먹고 자라는 소, 양의 고기 맛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인들이 특히 말 고기를 고기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카자흐' 의미는 자유인, 방랑자, 모험가의 뜻이라고 한다. 유목민 시대 광대한 초원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았던 역사를 나타낸다.

황무지를 닮은 황량한 초가을의 벌판은 구름이 잔뜩 낮게 깔려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시인들은 이러한 황무지에서 영감을 받아 멋진 시를 창조한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 시를 떠올린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며, 기억과 욕망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한 줌 먼지 속의 공포를 보여주리라"

차가운 바람이 황량한 평야를 스쳐 지나간다. 단순하고 고요한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지나가고 있다. 가까이에 산은 전혀 없고, 남쪽 저지대에 카스피해가 있다. 우리는 카스피해 북쪽을 지나서 곧 러시아 국경으로 들어갈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도로에 관광을 온 차량은 거의 없다. 13시쯤 카자흐스탄 국경 세관에 도착했다. 카자흐스탄 출국수속은 20여 분 만에 일찍 끝났다.

3일 전 큰 고생을 생각할 때 오늘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10킬로 거리를 차로 이동하면 우랄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우랄강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경선이다. 우랄강 다리를 건너면 러시아 병사가 총을 들고 서 있는 경비초소를 지나간다. 러시아 세관 통과를 기다리는 동안 역시 통관을 기다리는 카자흐스탄 트럭 기사와 도로 위에서 실없는 농담을 한다.

카자흐스탄 트럭 기사는 우리 차에 부착된 지도를 보면서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나타낸다. 내가 트럭 기사에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니 러시아 볼가강 중류의 도시로 화물을 싣고 간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 나이를 묻는다. 트럭 기사가 60살이라고 한다. 내 나이를 알려주면서 트럭 기사에게 나를 형이라고 불러라 말하고 함께 웃는다. 다행히 러시아 세관의 통과 절차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지리학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은 '우랄산맥'이 기준이다. 우랄산맥 서쪽은 유럽 대륙, 동쪽은 아시아 대륙이다. 지리학자들은 유럽과 아시아를 합쳐서 '유라시아 대륙'이라고 부른다. 드디어 자동차로 아시아 대륙을 지나 유럽 대륙의 남러시아에 진입하였다. 카스피해 북쪽의 지형은 저지대로 넓은 남러시아 초원이 펼쳐져 있다. 유라시아 대륙의 초원 지역은 동쪽부터 "몽골초원, 카자흐스탄 초원, 남러시아 초원" 순서로 연결되어 있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갈색 거친 초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전 관세청장 일행이 볼가강 하류에 설치된 부교를 건너고 있다. [사진=윤영선]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카자흐스탄 초원의 유목민 강자는 '스키타이' 족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카족'이라고 불렀던 '스키타이족'은 흑해 북부, 카스피해 북쪽 남러시아 초원과 카자흐스탄 초원에서 활동했던 종족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은 '사슴뿔 양식' 등 동물 문양 정교한 '금세공' 문화이다. 만 킬로 이상 멀리 떨어진 아시아 대륙의 최동쪽 신라 고분의 왕관에서 스키타이 금세공 양식이 발견되고 있다.

스키타이 금세공 문화가 신라에 전달된 경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하나는 스키타이족이 몽골고원을 통일한 흉노족에게 금세공 문화를 전달하고, 흉노족이 전수받은 스키타이 금세공 문화를 중앙아시아와 만주 지방을 거쳐서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신라의 계림으로 전달되었다는 학설이다.

다른 학설은 흉노족의 일파인 '남흉노' 족이 기원전 한 무제에 투항했다. 한 무제는 흉노족 족장에게 '김 일제'라는 이름을 내렸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낙랑군 등 '한 4군'을 평양에 설치했다. 한나라는 항복한 흉노족을 군대로 차출하여 변방의 낙랑군으로 보냈다.

서기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멸망 당한 후 낙랑군에 살던 흉노족 출신 귀족들이 스키타이 문화를 가지고 아직 부족 국가 상태인 신라로 이주, 스키타이 문화를 전달했다는 설이다. 3국을 통일한 신라 문무왕 묘비에 '나의 조상은 투우 김 일제'라는 비문의 발견으로 흉노족 후손과 경주김씨 연관성이 학계의 관심사이다.

어느 학설이 맞는지 알 수 없지만, 유럽 쪽 흑해 북부 남러시아 초원의 스키타이 문화가 오랜 세월을 걸려 아시아 대륙의 최동쪽 신라의 계림(경주)으로 온 것은 틀림없다. 우랄강을 통과 몇 시간을 이동하면, 러시아인들이 어머니 강이라고 부르는 '볼가강' 하류가 나타난다. 볼가강 하류는 '삼각주' 지역이라 많은 지류의 강으로 나뉘어 카스피해로 흘러간다.

볼가강 하류의 많은 지류에 콘크리트 다리가 설치되어 있는데, 유독 한 곳은 전생 영화 세트에 나올 것 같은 출렁다리 '부교(浮橋)'가 설치되어 있다. 출렁다리 '부교' 건너는 요금이 차 한 대당 500루블(원화 7500원)이다. 약 100미터 강폭을 지나는 요금인데 매우 비싸다. 이 부교는 인구 52만 명의 '아스트라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가야 하는 다리이다. '아마도 러시아 마피아 또는 공산당 실력자가 통행료 수입을 챙기려고 일부러 다리를 안 만드는 것일까?' 추측하며 다리를 건너간다.

볼가강 하류의 삼각주에 있는 '아스트라한' 시내의 작은 호텔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는 아스트라한 호텔은 유럽풍이다. 실내에 테니스 코트, 수영장 등 부대시설도 훌륭하다.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남아서 볼가강 지류로 아내, K 교수 세 명이 산책을 갔다. K 교수는 은퇴한 목사인데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신 분이다. 기분이 좋으면 멋지게 가곡을 한 곡 부른다. K 교수는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인데 성품이 온화하고 원만하다. 아내와 나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볼가강에 발을 담그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볼가강 언덕에 앉아서 유명한 러시아 민요 '볼가강의 뱃노래'를 유튜브에서 듣는다. 합창단의 우렁찬 목소리가 군가와 비슷하다. 2차세계대전 때 군가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애국심을 부추기는 민요이다. 민요의 후렴이 '어기영차 영차, 어기영차 영차' 우리의 뱃노래 후렴과 비슷하다. K 교수가 러시아 민요 '벼룩의 노래', '비가(엘레지)', 우리 가곡 '명태, 가고파' 등을 소개한다. 볼가강 강둑에 앉아 유튜브 음악을 들으며 감성의 시간을 즐겼다. 볼가강 강가에서 들었던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 가사가 가슴을 적신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갈색 거친 초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전 관세청장 부부가 아스트라한 호텔 근처 볼가강 하류의 지류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윤영선]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저녁 식사는 아스트라한의 호텔에서 볼가강의 민물고기 샤슬릭 요리(생선구이 일종), 러시아 흑맥주를 주문했다. 우리는 8도짜리 러시아 흑맥주를 처음 먹어봤다.

음식을 서빙하는 20대 중반 젊은 호텔 직원이 음식을 가져오면서 한국말로 "맛있게 드세요." 인사를 한다. 러시아 청년의 한국어 인사에 깜짝 놀랐다. 식사 후 러시아 청년에게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물어봤다.

러시아 청년은 오늘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났다고 말한다. 우리가 도착하자 인터넷을 찾아서 한국어 인사말을 연습해서 처음 사용해 봤다고 한다. 가수 BTS의 팬이라고 하면서 한국어 발음이 정확했는지 궁금해한다. 한국의 K-컬처가 러시아 남부의 시골 청년에게까지 알려졌음에 감동이다. 순간적으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에 자부심을 느낀다.

'아스트라한' 인접 지역은 러시아 역사에서 특별한 지역이다. 러시아는 1337년부터 약 240년 동안 몽골제국의 속국으로 있었다. 러시아는 이 기간을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른다. 러시아는 몽골족을 '타타르족'으로 불렀다. 칭기즈칸은 큰아들(주치)을 분가시키면서 '카자흐스탄의 이르티시강에서 몽골군의 말발굽이 닿는 미지의 서쪽 땅 전체'을 영토로 주었다.

칭기즈칸은 상속재산으로 미래에 정복할 땅을 약속한 것이다. 칭기즈칸 일족이 통치한 동유럽에서 중국까지 '팍스 몽골리아 시대'의 한 장면이다. 칭기즈칸의 장남 주치와 그의 자손이 남러시아에 세운 나라를 '킾차크 한국'이라고 부른다. 킾차크 칸국의 수도가 '사라이'인데 '아스트라한' 바로 옆 볼가강 하류에 있다. 볼가강 하류는 몽골족들이 좋아하는 드넓은 초원임을 이곳을 와 보고 알게 되었다.

칭기즈칸의 몽골족 후손들은 이후 남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을 통치했다. 소수 인원의 통치자 몽골족은 통치를 위해서 이슬람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다수 인원인 투르크족 문화에 동화되어 오늘날 중앙아시아 투르크 문화를 만들었던 역사의 현장을 지나가고 있다. 당시 '모스크바 공국'은 몽골족 킾차크 칸국에 세금을 대신 징수하는 세리 역할로 부를 창출하여 오늘날 강대국 러시아가 되었다.

아스트라한의 서쪽으로 볼가강 중류는 2차세계대전의 최대 격전지인 '스탈린 그라드'(현재'볼고그라드'로 변경)가 있다. 1942년 겨울 전투에서 수백만 명이 죽었다. 독일은 아제르바이잔 석유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침략했다 실패 후 2차세계대전 패전의 기로에 선다. 우리에게 익숙한 러시아 가곡 '백학'은 스탈린그라드 전선에서 살아남은 중앙아시아 출신 '감지토프'가 쓴 시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죽은 전우의 영혼이 하얀 학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을 기원하는 시라고 한다.

소련연방으로 있던 우크라이나 작곡가 '얀 프레겔'이 이 시에 곡을 붙여 '백학'이 탄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인이 작곡한 '백학' 곡을 2차세계대전 승전 진혼곡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두 나라는 현재 치열한 전쟁 중이다. 볼가강은 중세 시대 북유럽의 바이킹족들이 슬라브족을 납치해서 아랍 지역에 노예로 팔기도 했고, 모피, 보석(호박) 등을 아랍 상인과의 무역로로 이용했던 유서 깊은 강이다. 남러시아 초원과 볼가강을 건너,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애환이 많은 세계사의 현장을 지나가며 상상의 날개를 펴본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이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갈색 거친 초원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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